감사의 글¶
P-um.net / Association P-um Corée / 변정원 협회장
당신이 써준 이 글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며 마음 깊은 곳에서 잊고 있던 감정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 개인의 삶을 이렇게 정성스럽게 바라보고, 그 시간의 결을 따라가며 기록해 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나의 오랜 고독과 기쁨, 고민과 선택, 그리고 그 속에서 이어온 연대의 의미까지도 섬세하게 포착해 주었습니다. 나 자신조차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던 내면의 자리들을 당신의 문장은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비추어 주었습니다.
특히 내가 공예를 통해 마음의 균형을 찾아왔던 시절, 이방인으로 살아온 시간, 그리고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려 했던 작은 실천들까지도 깊은 이해로 감싸 안아 주었을 때, 나는 비로소 내가 걸어온 길이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다정한 시선으로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큰 위로였고, 존재가 다시 단단해지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당신의 글은 내 삶을 판단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내가 지나온 시간의 고유한 무늬를 그대로 감싸 안아 주었습니다.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감동이었는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당신의 언어는 나를 다시 내 자리로 데려다 놓았고, 내가 잊고 있던 의미들을 다시 떠올리게 해 주었습니다.
이 글은 단순한 헌사가 아니라, 오랜 시간을 함께 건너온 벗이 건네는 따뜻한 손길처럼 느껴집니다. 진심을 담아 나를 이해해 준 당신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의 시간 속에서도 이 글은 내게 오래도록 작은 등불이 되어 줄 것입니다.
- 공예라는 사물이 그녀가 될 때.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한국 전통 직조와 프랑스 브랜드 꼬달리의 협업 프로젝트, 「행복을 담는 주머니」 공예 작품에 들어갈 시(詩)를 불어로 옮기기 위해서였다. 그 시는 40대의 딸에게 어머니가 건네는 삶에 관한 짧은 미학적 성찰이 담긴 글이었다.
그녀는 유독 이 시의 감정 흐름에 깊이 반응하였고, 이 글 외에도 다른 글이 있으면 더 읽어보고 싶어 했다. 나는 그녀가 그 시 들을 단순한 번역 텍스트가 아니라 어머니이자 딸의 감각으로 흡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서로 글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그녀의 삶을 지탱해 온 내면의 질서와 미세하게 접속하게 되었다. 그리고 시라는 추상적 언어 사물과 물질적 공예 사물이 그녀의 오랜 시간 축적된 고독의 서사를 투영하고 있음도 알게 되었다. 보자기와 손가방의 구조가 맞닿아 “주머니”라 불리게 된 사물은 서서히 그녀의 감정이 개입되면서 그녀의 내면을 반사하는 사물이 되어 갔고, 그녀의 감정이 응축된 기표로 자리 잡아갔다.
그 주머니 안에는 그녀가 번역한 불어 시가 담겨 있다. 나는 이 번역이 단순한 언어 전환이 아니라 그녀의 생애 경험과 감정이 개입된 ‘변주’라고 생각한다.
이 팜플릿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이제는 그녀의 사물이 된 공예 작품은 애초에 총 다섯 점만 제작되는 것으로 기획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위해 한 점을 추가 제작해 그녀의 곁에 놓이게 하였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 서로 다른 맥락을 품고 존재하는 이 작은 사물은 그 자체로 하나의 네트워크를 이루는 공예적 아카이브가 되었다.
그녀와 나는 점차 희미해져 가는 전통을 다음 세대로 잇는 활동의 하나로 만났다. 전통이란 깨달으며 이어지는 과정이듯, 그녀와의 인연 또한 그러한 흐름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보내고 만나는 길 위에서 나보다 한 걸음 앞서 걷는 그녀의 언어를 가슴으로 이해하고 싶다.
오늘 그녀를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유난히 든든하고 온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삶의 지혜가 필요할 때마다 그녀에게 조용히 기대어갈 수 있는 거리에 그녀가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그녀는 인생 멘토를 넘어 삶의 방향을 비추는 하나의 미학적 지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감의 서열에서 언제나 가장 뒤에 위치했던 그녀 내면의 그녀에 게 손을 내밀어 함께 걸어준 뱅상안 그리고 박아름에게 깊은 우정과 연대의 마음을 보낸다. 이 글을 쓰는 시간 동안, 뱅상안의 음악과 박아름의 미술을 통해 나 역시 내 안의 어떤 지점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음을 기록해 두고 싶다.
- 그녀에게 존경을 건네며
누군가에게 그녀의 삶을 말해야 한다면, 나는 무엇보다 그녀가 『태백산맥』과 『아리랑』이라는 소설을 프랑스어로 옮겨왔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다. 22권에 이르는 이 방대한 서사는 한반도가 둘로 갈라지는 과정에서 국가에 의해 수만 명의 생명이 희생된 사건이다.
그녀가 이 작품을 번역해온 일은 집단의 고통과 개인의 상처를 함께 감당하려 했던 그녀의 삶의 철학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태백산맥은 1945년 해방부터 1953년 한국전쟁까지, 미군정기(美軍政期)와 제주 4·3 사건, 여순사건 등을 거치며 한반도가 두 국가 체제로 굳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의 현실을 정면으로 다룬다. 작품의 주요 무대는 전라도 벌교·보성과 빨치산(조선인민유격대)의 활동 지역인 지리산 일대이다. 제목 ‘태백산맥’은 특정 지리적 배경을 뜻하기보다, 한반도를 관통해 남북을 잇는 거대한 산줄기처럼 민족 전체를 하나로 묶는 원형적 상징이며, 민족사 전체를 포괄하는 이름이다.
소설은 해방 직후 미국과 소련을 축으로 한 세계 질서 재편 속에서 남한 내부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이념 대립으로 급격히 분열하는 양상을 그린다. 그러나 당시 민중은 이러한 이념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시대적 폭력에 휘말리고, 그 결과 공동체 내부에서 서로를 겨누는 참혹한 민족상잔이 발생한다. 태백산맥은 이 비극이 어떤 역사적 층위로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한국 사회의 근원적 상처로 어떻게 남았는지를 총 10권의 방대한 서사로 그려낸다.
아리랑은 일제강점기를 중심으로 한반도에 닥친 현실을 다층적으로 기록한 총 12권의 대하소설이다. 동학농민운동 이후의 민중 삶을 출발점으로, 토지조사사업과 농촌 경제의 붕괴, 독립운동의 전개, 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의 격동을 한 흐름 속에 담아낸다. 전라도 평야 지대는 가장 극심한 수탈과 저항이 맞물린 공간으로, 이곳에서 축적된 고통과 상실, 분노와 생존 의지는 작품을 관통하는 집단적 정서를 형성한다.
‘아리랑’이라는 제목은 단순한 민요의 이름을 넘어 민족의 운명과 집단 기억을 소환하는 상징이며, 일본 제국주의가 남긴 폭력 속에서도 민중이 어떻게 저항의 에너지를 축적하며 삶을 견뎌냈는지를 응축한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의 비극을 증언하는 문학사적 기록이자, 근대사에 각인된 상처를 되살리는 서사로서, 식민 지배가 남긴 구조적 폭력과 민중의 생존 기억을 포착한 민족적 서사이다. 더불어 해방 이후에도 전쟁과 분단의 비극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암시하며, 근대 한국사의 연속된 상흔을 드러낸다.
변정원은 50년 전 이화여대에서 불문학ㅡ불어교육을 전공하고 이화 여대 부속고등학교에서 불어교사로 재직했다. 이후 파리 유학길에 오르기 전에 노동청 기술협력과에서의 공직 경험, 프랑스 정부 장학생으로서 파리 국제행정대학원 IIAP을 한국 여성 최초로 졸업 (1976) Paris Sorbonne Nouvelle 대학에서 “시몬느 베이유 사상 연구” 박사과정 이수 탁월한 학문적 경력을 쌓았다.
변정원, 조르주 지겔메이어 부부는 태백산맥(La chaîne des monts Taebaek) 번역으로 프랑스어진흥협회(APFA) 주관 프랑스 총리실 산하 프랑스어 총리실과 프랑스어권 국OIF)가 후원하는 ‘레 모 도르(Les Mots d’Or)황금언어상 역사발견 부문을 만장일치로 수상했다.(2008년).
- 그녀가 타자의 아픔을 흡수한다는 거
프랑스로 건너간 시기, 파리 안에서 한국은 거의 알려지지 않은 국가에 가까웠다. 이러한 환경에서 한국 출신 여성이 프랑스 사회에서 지식인으로 자리 잡는다는 일은 낯선 문화적 지형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구축해야 하는 과제와도 같았다.
그녀는 이미 한국의 지적 전통 속에서 성장한 고학력의 교육자였지만, 파리에서는 모든 것이 다시 처음부터 증명되어야만 했다. 그녀가 경험한 그 간극은 단순한 사회적 어려움이 아니라, 존재의 기반을 다시 묻는 정신적 부담을 동반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지적 세계를 확장하는 동력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녀가 현실과 이상 사이의 충돌을 스스로 견디며 성장하기 위해서 그녀 안에 존재했던 보여주지 못한 고독을 이겨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가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번역한 일은 단순한 작품 선택이 아니었다.
그 선택에는 국가 폭력 속에서 스러져간 이들의 목소리를 외부 세계로 옮기려는 애도의 윤리가 자리한다. 동시에 그것은 한반도의 비극이 내부의 문제만이 아니라, 제국주의 침략과 냉전 질서 속에서 형성된 세계사적 폭력 구조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직시한 지식인의 책임감이기도 했다. 그녀는 한국 사회가 짊어진 아픔을 다른 언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어두운 부분을 수면 위로 견인한다는 것은 국제 사회에게 한반도 분단의 원인을 되묻는 것이기도 했다.
파리 디아스포라 공동체 안에서 그녀는 한국 문화와 언어를 2세대, 3세대에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녀의 재능을 활용했으며, 분열된 정체성을 안고 살아가는 이민자에게는 어른으로서 큰 버팀목이 되어 왔다.
그녀가 특히 주목해 온 해외 입양 문제는 개인과 집단의 영역을 넘어 인간의 아픔에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해외 입양은 1950년 이후 현재까지 25만 명이 넘는 아동이 해외로 보내졌고, 유럽이 5만명 정도이고 그중 15,000명에 가까운 아동이 프랑스로 입양됐다. 이 숫자는 단지 통계가 아니라 오늘의 고통으로 지속되고 있다.
입양인이 겪는 정체성의 분열, 기원의 상실, 국가에 대한 복합적 감정은 개인이 감당할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몫이자, 국가가 폭력의 당사자로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을 그녀는 꾸준히 말해왔다.
그녀가 타인의 고통을 주변부로 밀어두지 않고 공동체 중심으로 가져오는 태도는 단순한 개인의 윤리를 넘어,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지 질문하게 한다.
그녀는 인생의 대부분을 파리에서 보냈음에도 거의 평생을 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다. 이 외국인이라는 단어는 그녀의 삶 속에 일정하고 미묘한 긴장과의 동행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녀가 한국에서도 파리에서도 이미 기득권층이라는 조건과 상관없이 집단, 혹은 개인의 상처와 아픔을 향해 다가갈 때 그녀 자신 또한 그 고통의 지평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4 존재를 매개하는 공예적 시간
사물은 스스로 기억을 저장하지 않는다. 사물에 시간을 부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지각, 축적된 경험, 그리고 그 사이로 흐르는 시간이다. 사물의 가치는 물질 자체에 내재한 속성보다, 그 사물이 인간의 삶 속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다시 말해, 사물은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획득한다.
변정원의 사물 또한 이러한 관계적 기억의 구조 안에서 두 개의 흐름으로 갈라진다. 하나는 타인이 그녀에게 건넨 선물의 형태로 삶에 들어온 것들, 다른 하나는 그녀가 스스로 선택하고 수집해 온 것들이다. 서로 다른 경로에서 도착한 사물이지만, 이들은 그녀의 생애 속에서 결국 하나의 감정의 깊이를 이루며 통합된 정서를 형성한다.
그녀가 반세기 동안 타국에서 살아온 시간 동안, 자수는 그녀의 내적 균형을 조율하는 매개체였다. 바늘과 실이라는 단순한 물성은 그녀의 손에 의해 시간을 흡수하며 완성되는 일종의 수행적 행위였고, 동시에 명상의 공간이었다. 자수는 사유의 방식이자 고독을 가라앉히는 심리적 장소였으며, 말로는 끝내 전달될 수 없었던 침묵과 고독을 견디게 하는 내밀한 구조였다.
그와 병행하여, 그녀가 외국에서 살아가는 동안 지인들이 건넨 동양자수, 병풍액자, 동양화, 작은 오브제들은 또 다른 의미를 획득했다. 그것들은 디아스포라로서의 정체성과 한국인의 정체성 사이에서 늘 이방인이 되어야 했던 자아를 다시금 하나의 중심으로 응축시켜주는 장치였다. 9,000km 떨어진 한국의 기억을 호출하며 그녀를 다시 ‘자기 자리’로 데려오는 물리적·정서적 매개체였던 것이다.
그녀가 소장품 이미지를 보내왔을 때, 나는 그것을 단순한 목록이 아니라, 그녀의 삶과 기억의 미세한 흐름을 보존한 ‘사물 아카이브’로 읽었다. 이미지 하나하나를 바라보는 동안, 그녀가 그 사물들과 함께 나누었을 순간들이 그림처럼 지나갔다. 그 장면들은 언어로 변환되었고, 그 언어는 그녀의 실존을 둘러싼 서사로 다시 짜여졌다.
사물은 인간을 만나는 순간 시간성을 획득한다. 우리는 사물을 통해 기억을 지속시키고, 사물을 통해 과거를 호출하며, 그 과정에서 존재의 연속성을 확인한다.
사물은 기억이 응집된 장소이자, 우리의 삶을 수용하는 동시에 그것을 되비추는 존재가 된다.
- 모든 인연에는 마지막이 기다린다
사물을 떠나보낸다는 행위는 일상적 소비의 잔여를 정리하는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삶을 구성해 온 물질문화를 새로운 맥락으로 재배치하는 전환적 실천이다. 특히 오랫동안 소유자의 삶과 결합해 온 사물일수록 그 이동은 단순한 처분이 아니라, 관계의 재구성이라는 깊은 의미를 지닌다.
사적 사물들을 공동체가 접근할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옮기는 일은 물질문화 연구에서 말하는 ‘재배치된 가치’의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사물의 기능이나 가격이 아니라, 그 사물이 오랫동안 매개해 온 정서와 기억들이 어떤 방식으로 새롭게 해석되며 확장되어 가는가에 있다.
그녀가 선택한 장소는 갤러리 혹은 상업적 플랫폼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오가며 소통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이곳은 소비의 장소가 아니라, 정서와 시간이 교류되는 비물질적 상호작용이 발생하는 문화적 교류의 장이다. 이 공간에서 사물은 경제적 지표에서 문화적 위치로 이동한다.
사물이 다른 손으로 건너가는 과정은 단순한 소유의 변화가 아니라, 그 사물에 응축돼 온 정서적 여운과 기억들이
다른 해석 체계 속에서 다시 작동하기 시작하는 관계적 순환의 한 형태가 된다. 이러한 방식은 그녀가 번역 예술가이자 문화 활동가로서 평생 수행해 온 문화 간 의미의 이동과도 깊게 맞닿아 있다. 사물의 이동이란 다른 주체에게 다음 서사를 건네는 하나의 관계적 확장이며, 의미를 다시 분배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즉, 사물이 이동하는 과정은 사물의 생애를 다시 서술하고 새로운 관계 속에서 재배치하는 것이다.
관람자 혹은 미래의 소유자는 사물을 받아드리는 순간 그 사물의 다음 서사를 함께 써 내려가는 주체가 된다.
이는 사물을 떠나보낸다는 행위가 단순한 처분이 아니라 문화적 전환임을 보여준다. 그 전환 속에서 사물은 기존의 의미를 잃지 않고 다른 자리에서 새로운 존재 방식을 획득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이번 프로젝트가 지닌 가장 중요한 미학적 깊이다.
6.삶은 언제나 다시 나아간다
디아스포라의 삶은 언제나 정체성이 흩어지는 조건을 전제로 한다. 타인의 땅에서 자신의 기원과 현재를 조율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억은 하나의 직선적 이야기로 고정되지 않는다. 사회적 위치와 삶의 환경에 따라 흔들리고 재정렬되며, 여러 감정과 경험이 서로 교차할 때 각자의 상처는 다른 이의 내면을 비추며 새로운 울림을 생성한다. 이런 현상을 ‘정서적 상호 비추기’라 부르고자 한다.
변정원의 기억은 오랜 세월의 경험이 응축된 형태로 존재한다. 그녀가 특정한 사물들은 정체성이 흔들릴 때 균형을 되찾기 위해 스스로 불러온 내적 조절 장치로 기능해 왔다.
그녀가 지닌 무형 문화적 배경을 품은 사물들은 흩어져 있던 자기 이미지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주는 개인적 기록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변정원의 사물은 삶을 통과하며 응고한 기억의 압력들이 표면으로 드러난 결과에 가깝다.
반면 박아름의 예술은 전혀 다른 기원을 바탕으로 한다. 입양이라는 제도적 폭력은 그녀에게 감각적 기억의 기반을 제거한 채 ‘사실만 남겨진 출발점’을 남겼다. 그녀는 자신의 이동 경로를 알고 있지만, 이는 감정과 연결되지 못한 채 삶 속에 남겨진 빈자리로 존재한다.
바로 이 결여된 기원이 그녀 작업의 근본 구조를 형성한다. 오랫동안 보이지 않던 이 공백은, 입양 당시 신고 있던 고무신이 뒤늦게 발견된 사건을 통해 물질적 형태로 불려 나왔다.
그녀가 그 신발을 유리 캡슐로 보존해 전시장에 옮긴 행위는 사라진 기억을 재현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부재한 기원의 자리에서 남아 있던 감각적 잔여를 사회적 표면 위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이 작은 신발은 잃어버린 기억을 복구하지는 못하지만, 기억될 수 없었던 시간을 대신하여 작동하는 하나의 촉각적 흔적이 된다. 이러한 사물적 파편은 그녀의 회화 속에서 지표, 선, 틈, 여백으로 번역되며 유기적으로 결합 된다. 신발은 출발점의 흔적을 담고 있고, 회화의 표면은 그 흔적에 도달할 수 없는 내적 간극을 드러낸다. 두 요소는 서로 충돌하고 스며들며, 기억이 부재할 때 형성되는 심리적 압력을 시각적 진동으로 변환한다. 그래서 박아름의 회화는 재현의 언어에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억의 환원이 아니라, 기억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자리에서 발생한 정서적 긴장을 탐색하는 수행적 행위에 가깝다.
뱅상안안의 음악은 기원의 흔적이 남지 않은 자리에서 출발한다. 그에게는 삭제된 과거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정체성을 가리킬 최소한의 단서, 기억의 조각, 혈통의 표식 등 어떤 출발점도 처음부터 부여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는 성장했다. 이 공백은 상실의 변형이 아니라, 도달할 수 없는 시작점이 남긴 원초적 여백이다. 그의 음악 세계는 바로 이 여백을 기반으로 한다.
그는 피아노라는 물질적 접촉과 목소리라는 신체적 울림을 통해 스스로를 지탱하는 리듬을 구축해 왔다. 반복되는 음형은 완결된 작곡을 향한 의지가 아니라, 비어 있는 중심이 무너지지 않도록 내면이 스스로 조절하는 호흡이다. 그의 음악은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감정의 떨림을 음향으로 바꾸는 하나의 내적 기록이며, 결핍을 회복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한 번도 채워진 적 없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정교한 균형의 운동이다.
그는 악보 위에 구조를 세우기보다, 기억의 공백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진동을 따라가며 포착한다. 이런 점에서 그의 음악은 표현보다는 지속이며, 기승전결보다 존재의 유지에 가까운 방식이다. 뱅상의 음악은 ‘비워진 기원’이라는 조건을 버티는 리듬이 한 예술가의 형식으로 정착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바로 그 경험이 그를 현대 음악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세 사람의 조우는 ‘기원의 부재’를 공통의 경험으로 삼을 때 비로소 온전히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 공간은 어느 누구에게도 완전한 귀속감을 허락하지 않기에, 그들의 만남은 대칭적인 구조로 정렬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의 상처가 서로를 비추며 교차하는 비대칭적 관계로 움직인다.
동양미학에서 서로 다른 힘이 부딪히면서 새로운 질서를 이루듯, 이들의 차이는 상호 보완적 호흡으로 전환된다. 이때 사물은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세 사람의 존재가 서로에게 드러나는 매개적 역할을 수행한다.
변정원의 생애에서 이번 프로젝트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반세기 동안 그녀는 다양한 역할 속에서 자신을 조절해야 했다. 그 역할들은 삶을 지탱한 힘이었지만 동시에 그녀 고유의 내적 실체를 오랫동안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역할을 넘어 존재 그 자체로 자신을 바라보려 한다.
타인의 내밀한 세계를 통과해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가는 이 과정은,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개인적 서사와 자연스럽게 겹친다. 세 사람이 남기는 새로운 소통방식은 이 자리에 머무르는 이들에게 스스로의 내면을 다시 듣게 만드는 정서적 지평으로 확장되며, 가장 인간적인 연대의 형태를 보여준다.
이 프로젝트는 결핍을 버텨온 삶들이 서로를 비추고 교차하며, 마침내 각자가 오랫동안 외면해 온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만드는 장치이자, 개인의 전시를 넘어 인간 존재 깊숙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정서적 공존의 가능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시도이다.